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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뇌로부터의 자유 - 마이클 가자니가

thinknew 2016. 1. 31. 20:36




이 책의 저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사회적 뇌', '윤리적 뇌', 그리고 이 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저작들로 널리 알려진 인지신경생리학자이다. 과학자들은 필연적으로 연구하는 대상에 대해 환원론적으로 접근한다. 세부적인 지식들이 축적되면 그것들을 바탕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통합에 나선다. 저자도 이 경로를 따른다. 앞의 두 책이 환원론에 입각한 신경생리학의 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거대 담론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기포드 강연이란 것이 있다.
"애덤 로드 키로드Adam Lord Gifford. 철학과 자연신학에 남다른 열정을 지녔던 19세기 에든버러 변호사이자 판사였던 그의 요청과 기부 덕에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은 1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강연에서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저자가 직접 밝힌 이 책의 저술 목적이다.
"정신과 뇌를 어떻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지와 관련해 진전하고 있는 바를 내가 보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진화론 진영은 크게 인간에 대한 의미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쪽과 의미론을 인정하자는 쪽,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다. 인간과 동물은 같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포유류와 유인원이 다른 것 이상으로 인간은 침팬지와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두 진영이 나누어 진다. 저자는 인간을 유의미한 존재라고 인정하자는 쪽이다. 그러나 선언적으로 하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를 이 책에서 논리정연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유의미한 존재냐 아니면 단지 동물의 연장선 상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냐를 논의하는 데에 있어서 결정론에 관한 논쟁이 흔히 등장한다. 먼저 결정론이란 다음과 같다.

"결정론은 자연법칙에 따라 조합된 선행 사건이 있어야 인간의 인지, 결정, 행위를 포함한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 행동이 일어난다는 철학적 믿음이다."

물리적 구조로서의 뇌는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많은 신경생리학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결정론을 주장한다. 그런데 그 연구 결과들이 축적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같이 제공한다.
"인간의 두뇌가 이룬 성과들은 우리가 목적 의식을 가진 중심적 자아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좋은 이유다."

뇌의 기능을 검토해보면 물리적 구조(뇌의 크기, 세포 수, 특정 신경세표의 존재 유무 등)도 중요하지만 신경 세포 간의 연결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환경의 영향을 받는 이 신경 세포들 간의 연결에서 창발적 속성이 생겨난다. 창발적 속성이란 복잡계에서 나오는말이고, 복잡계 및 창발적 속성이란 다음과 같다.
"복잡계 complex system 는 상호작용을 통해 부분의 합보다 큰 창발적emergent 속성을 만들어 내고 일단 생성된 속성은 이전의 부분적 속성으로 축소될 수 없는 수많은 체계들로 구성된다."

이런 창발적 속성때문에 몇몇 과학자들은 인간은 유의미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위대한 뇌과학자 데이비드 마David Marr의 말처럼 깃털을 연구한다고 새가 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뇌가 만들어낸 의식 경험 자체의 본질과 관계가 있는데, 인간이 향유하는 정신 상태가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신경 간, 세포 간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뇌는 그렇게 많은 국소처리장치들을 통해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데 어째서 겉으로는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일까?"
"뇌 조직이 엄청난 수의 결정 중추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조직의 한 수준에서 일어나는 신경 활동을 다른 수준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인터넷처럼 명령을 내리는 본부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도 아는데 인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저자도 자유의지, 개인의 자유, 의식, 책임 등과 같은 거대 담론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거대 담론으로 들어가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부터 유래하는 서양의 지적 사유의 전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보다는 철학적 사유 중에서 부분적으로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설명들을 차용한다. 저자는 당연하게도 현대 과학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도덕적 행위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의 존재 여부를 따지는 질문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 철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두고 수백 년 째 대립하는 동안 신경과학자들이 실증적 중거와 도구들을 가지고 우리의 대답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 또한 버리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에 대한 공정한 처우에 기반한 정의가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한 반면 플라톤은 큰 그림을 보고 사회에 대한 공정함이 가장 중요하며 개별 사건에 대한 판결은 이 목적을 염두에 두고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거대 담론으로 접어든 저자의 설명들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해석기 모듈(추론을 담당하는 좌뇌의 역할)이 당신의 행위를 최대한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다. 설명에 포함되지 못한 것들은 거부되거나 합리화된다."창발은 전혀 평형하지 않은 (따라서 임의적인 사건의 발생이 증폭되는) 복잡한 미시적 구조가 (창조적이고 자기 발생적이며 적응력을 찾는 동작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구조로 조직되어 전에는 없던 새로운 속성을 나타내는 거시적 구조가 되는 것을 뜻한다."내 생각에 의식적 사고는 창발된 속성이다. 신경으로 사고를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상호작용할 때 일어나는 일과 유사한 사고의 현실성이나 추상성을 입증할 뿐이다. 정신은 두뇌로부터 독립된 속성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뇌에 종속된 속성인 것이다."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저자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입장을 드러낸다.
"사람의 행동과 인지적 태도, 근본적인 생리가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또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의식'이 개인적 속성에 속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속성에 속하는 것은 자유의지, 사회적 책임 등이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본성은 변함이 없지만 사회라는 바깥 세상에서 행동은 변할 수 있다. 무의식적 의도에 제동을 걸 수는 있다." "우리는 사람이지 뇌가 아니다. 우리는 뇌에서 창발하는 정신이 뇌와 상호작용할 때 발생하는 바로 그 추상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단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삶의 본질이다.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특히 신경과학과 심리학처럼 해석적 성격이 강한 과학에서 변하는 것은 끊임없이 쌓여가는 대자연의 사실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고 과학이 발견한 사실들을 논란이 있는 과거의 사유를 차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책을 마무리 짓는다.
"이 책의 자료를 검토하던 중 정신 과정이 뇌를 제약하거나 그 반대로 뇌가 정신과정을 제약할 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고유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