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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개소리에 대하여 - 해리 프랭크퍼트

thinknew 2017. 4. 16. 16:06


정치인들이 개소리를 남발하는 것은 동서양이 별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지금 대선 기간이어서 개소리 풍년이기도 하다. 그 개소리에 대해서 철학적으로 접근한 책이 있다. 바로 다음 책이다.



이 책의 원 제목은 'On Bullshit"이다. 이 'Bullshit'이라는 단어는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다. 외국 영화에서 이 단어가 사용되는 상황을 보면 주로 '헛소리' 또는 (악의적인) '거짓말' 정도로 번역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그런데 번역자는 좀 더 강한 느낌을 주는 '개소리'로 번역했다. 이 포스트의 말미에 번역자의 글을 인용할 때 확인할 수 있겠지만 아무튼 정치인들의 헛소리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했을 수도 있고, 좀 더 선정적인 제목을 위해서 일 수도 있다.

이 책은 또 손바닥만한 판형에 페이지도 70여 페이지에 불과해서 가볍게 읽기에 제격이기도 하다. 저자는 '개소리'에 대해 철학적 접근을 한다고 했으나, 어차피 철학적 논의라는 것이 탁상공론에 머물기 십상이고, 저자 자신도 그렇게 언급해 두었으므로 정독을 할 필요는 전혀 없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언급을 보자.
"내 목적은 개소리의 본질이 무엇이고, 개소리가 아닌 것과 개소리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조금 달리 말하자면, 개소리의 개념 구조를 개략적으로 규명하는 것이 나의 목적이다."
"개소리를 구성하는 데 논리적으로 필요충분한 조건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어떠한 의견도 어느 정도는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우선, 개소리라는 표현은 종종 꽤 느슨하게, 글자 그대로의 특수한 의미와 관계없이, 단순히 욕설을 가리키는 일반용어로 사용된다. 다음으로, 현상 자체가 매우 광범위하고 일정한 형태가 없기 때문에 뚜렷하고 명쾌한 분석은 무리한 획일화가 되기 쉽다. 하지만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 말이 결정적인 것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사실 개소리에 관한 가장 기본적이고 예비적인 질문들도 대답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제기되지도 못한 채로 끝날 것이다."


그리곤, Bullshit 에 대한 사전적 의미 분석 약간과 철학 및 문학 작품 속에 나오는 경우 몇 가지를 분석해 놓았다. 그리고 저자는 거짓말보다 좀 더 나쁜 의미로 해석을 해 두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같은 게임 속에서 반대편으로 활동한다. 그들 각각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사실에 반응한다. 비록 한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따르고, 다른 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저항하며 그 요구에 맞추기를 거부하지만 말이다. 개소리쟁이는 이러한 요구를 모두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 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저자의 분석에서는 별다른 의미를 찾을 수 없지만 번역자가 책 뒤에 첨부해 둔 후기에는 번역자의 해석이 추가되어 있는데 이게 그럭저럭 읽을 만하다.
"저자의 분석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개소리가 거짓말보다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자기 말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기 위해서라도 진리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보여주는 데 반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든 거짓이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 한마디로 진리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사랑의 반대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과 유사하게, 진리의 가장 큰 적은 거짓말이 아니라 개소리가 된다.
   더욱이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편리하다. 거짓말을 지어내는 데는 생각보다 엄격한 지적 엄밀성과 장인정신이 필요하다. 무엇이 진리인 줄 모르는 자는 거짓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완벽하게 꾸며내지 못한 거짓말은 금세 들통나기 때문이다. 반면 개소리는 그 말의 뜻에서부터 '엉터리'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굳이 공들여 만들 필요가 없다. 단지 약간의 뻔뻔함만 있으면 된다.
   또한 거짓말은 거짓임이 들통나면 커다란 비난이 쏟아지지만, 개소리에 대해서는 그저 어깨만 으쓱하고 지나칠 뿐이다. 거짓말이 실패하면 수치스럽지만, 개소리는 실패하더라도 관용된다. 개소리에 대해서 정색하고 달려들면 웃자고 하는 소리에 죽자고 달려든다고 역공을 받는다."


또 해제를 추가해 두었는데 거기서 철학적 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가볍게 언급하고 있어 볼 필요가 있다.
"보편학으로서 철학은 전체로서의 세계와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그러다보니 철학자들은 종종 '자유와 필연'이라든지, '언어와 세계'라든지, '이성의 기능성과 한계' 따위의 소위 '심오하고 거창한' 주제들을 다룬다. 하지만 철학이 보편학이라는 이야기는 개별 학문이 다룰 수 없는 보편적인 주제들이 철학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만이 아니라 철학이 다루지 못할 주제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것이 심지어 개소리와 같은 상스러운 주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서두에 언급했다시피 이 책의 독서 추천은 '중립'으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