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new :: 자조론 - 새뮤열 스마일스



이 책은 1859에 출판되었으니 19세기 판 ‘성공/자기계발’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시대의 주류 사조였던 청교도 윤리, 즉 근면, 성실, 정직, 금욕, 소명으로서의 직업 등을 바탕으로 청년들에게 성공적인 삶에 이르는 길잡이로써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문제는 이 또한 안내일 뿐이지 해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 자신도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다.
“인간은 성공을 자기 마음대로 거둘 수 없다. 그러나 더 노력하면 성공할 자격을 갖출 수는 있다."

옳든 그르든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 볼 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하지만 나처럼 좋은 쪽이 되었든 나쁜 쪽이 되었든 정확한 사실 또는 현실을 알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결과로서의 성공 사례들을 길게 서술해 놓은 거의 600 페이지에 이르는 이 책을 굳이 읽어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건성으로 읽었긴 하지만 이왕지사 읽었으니 몇가지 생각해 볼 만한 구절들을 중심으로 나의 생각을 전개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처음에는 굳이 읽어 볼 생각이 없었지만 나의 해석을 보고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읽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한 나라의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보다 앞서가는 정부는 국민의 수준에 맞게 끌어내려지고, 국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정부는 세월이 흐르면서 차츰 국민의 수준에 걸맞게 끌어올려진다."
성공과는 별 상관이 없는 구절이긴 하지만 현재의 한국 정치 상황과 관련하여 생각할 거리가 있다. 노무현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배척받았던 것을 보면 ‘국민보다 앞서가는 정부는 국민의 수준에 맞게 끌어내려진다’는 말은 맞는 말 같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수준보다 앞서가는 정부일까? 뒤쳐지는 정부일까? 내 생각에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것 같다. 따라서 위의 서술이 맞다 하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끌어올려질 가능성은 없는 것 같다.

"인생 행로에 극복하기 불가능한 장애물은 없다. 노력과 인내의 힘을 모아 활용되지 않았다면 휴면 상태에 있을 생명력을 역경이 자극함으로써 최상의 조력자가 된 경우도 많으며, 장애물을 극복하고 승리를 쟁취한 사례가 실로 많다.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속담은 옳다."
가슴이 벅차오르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의지가 충만하다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라.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맨손이나 지식만 가지고는 많은 일을 할 수 없다. 일을 하려면 도구와 남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남의 손도 필요하고, 남의 지식도 필요하다. – 베이컨"
이 말은 시대를 초월하여 염두에 두어야 할 잠언일 것이다.

"가치 있는 목적을 확고한 각오로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인격의 기초를 닦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힘은 지루하고 고된 일과 무미건조한 일상사를 참고 견뎌내게 해주며, 인생의 여정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게 해준다. 목표를 성취하려면 천부적인 재능보다 좌절하지 않고 위험을 마다하지 않으며 힘차게 전진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거나 목적을 달성하려면 힘만 가지고는 안되며, 활기차게 끊임없이 노력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의지력은 바로 인격의 중심적인 힘, 즉 인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의지력은 참된 희망의 기반이 되고, 삶에 진정한 향기를 불어넣는 것은 희망이다."
저자 자신도 희망이 중요하다고 했으니 청년들에게 희망을 불어 넣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희망의 기반이 되는 의지력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어서 희망 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허하다.

"논리학자들이 자유로운 의지에 관해 이론적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든 상관없이 개개인은 실제로 선과 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물에 내던져져 물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가는 미약한 존재가 아니며 헤엄을 칠 수 있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스스로 수족을 움직여서 파도와 싸우고 자기가 원하는 대로 크게 방향을 바꿀 수도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력을 절대적으로 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이 정립되기 전의 생각이어서 이 자체를 문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행동심리학이나 진화심리학 같은 분야에서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에 의하면 ‘자유로운 의지’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거의 부정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결국 믿고 싶은 사람들만 믿는 그런 이야기가 된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 속담은 진리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길이 있다는 것과 실제로 성공에 이른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어서 듣기에는 좋으나 반쪽짜리 서술이다.

"돈을 인생의 주목적으로 여겨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하찮게 생각해도 안된다. 육체적 안락과 사회적 복지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절약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욕구를 참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절약은 동물적 본능에 대한 이성의 지배를 의미한다. 절약은 인색함과 전혀 다르다. 항상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는 여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돈을 우상으로 받들지 않고 유용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걸리버 여행기의 작가 조나단 스위프트는 이렇게 말했다.
"돈은 머리에 넣고 다녀라. 절대로 가슴에 품지 마라."
절약은 분별력의 딸이고 절제의 누이이며 자유의 어머니다."

위의 두 구절은 돈에 대한 관념에 대한 것이다. 돈을 무조건 멀리 하라는 우리의 가르침보다는 점 더 현명한 것 같다.

""공부에 대한 인내심 결여는 현 세대가 가진 정신질환이다" 이 말은 오늘날에도 적용된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고 믿으면서도 쉬운 길은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열심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은 저 때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졌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목표와 목적을 위해 그 지식을 소유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지식의 목적은 지혜를 원숙하게 완성하고 인격을 향상시켜 더 나은 사람, 더 행복한 사람, 더 유능한 사람이 되어 높은 인생의 목표를 더욱 활기차고 효율적으로 추구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식을 이렇게만 사용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지식을 오용하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아무리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현재나 과거의 위대한 사상가를 누추한 자기 집에 맞아들여 함께 앉아 말동무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지향점을 가지고 독서하는 습관을 들이면 커다란 기쁨과 자기 개선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원천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인격과 행동의 방향에 적절한 억제력을 행사해 매우 유익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자기 수양이 부귀를 가져다 주지 않더라도 언제나 한층 차원 높은 사상을 인생의 동반자로 삼을 수 있게 된다. 어느 귀족이 한 현자에게 경멸하는 말투로 물은 적이 있다.
"그렇게 심오한 철학을 깨달아서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현자의 대답은 이러했다.
"적어도 내 마음 속에 상류 사회를 건설하게 되었지요.""

나도 이런 마음으로 책을 읽는다. 다른 사람들도 이런 마음을 가져주기를 바라기도 하고.

"인간의 삶과 이 세상에는 불멸의 요소가 있다. 어느 누구도 우주에서 혼자 살 수 없으며 상호 의존 체제의 구성원이 된다. 개개인의 행동에 따라 인류의 복지가 영원히 개선되거나 악화될 수 있다. 현재는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고 선조들의 생애와 모범이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의 일상 활동도 미래 사회의 조건과 성격 형성에 이바지하게 된다."
오랫동안 철학자들은 저렇게 믿었으며 그 불멸의 요소를 알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근대의 과학은 불멸의 요소란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단지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고 많은 증거를 제시한다.

"수학자 겸 발명가 찰스 배비지Charles Babbage가 이러한 생각을 그의 저서에서 멋진 문장으로 표현했으니 그의 글을 여기 인용해 본다.
“모든 원자는 선 또는 악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갖가지 운동성을 갖추고 있다. 철학자들과 현인들이 수만 가지 방법을 혼합하고 결합해 이 운동성을 정의했으나 그 정의는 모두 가치가 없는 엉터리다.""

철학자들이 추론만으로 운동성을 알려고 한 것이 엉터리였듯 원자에 선과 악이 표시되었다는 생각도 엉터리다.

"전기집의 주요 용도는 그 속에 풍부하게 담겨 있는 고결한 인격을 본받기 위한 것이다. 위대한 선조들은 생애의 기록과 그들이 행한 업적을 통해 우리 가운데 늘 살아 있다. 선조들은 지금도 탁자에서 우리 곁에 앉아서 우리의 손을 잡고 우리가 공부하고 존경하고 본받아야 할 모범을 보여 주고 있다. 고결한 삶의 기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선조들은 모두 후손에게 영원한 선행의 원천을 유산으로 물려준 것이다. 이 기록은 다가올 미래 언제든지 인격을 도야하는 데 모범이 될 것이다."
위인들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 우리의 삶을 조절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이다. 문제는 그 인물이 진정으로 모범으로 삼을 만한 인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바로 이러한 점에서 좋은 습관을 기르면 인격을 강화하고 지탱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습관의 묶음’이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이탈리아 시인 메타스타시오Metastasio는 행동과 생각을 반복할 때 생기는 힘에 대해 강력하게 주장했다.
“인류의 모든 것은 습관이다. 심지어 미덕도 습관일 뿐이다.""
"브로엄은 청년 시절에는 본보기에 따라 훈련하는 것이 극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의 가호 아래 모든 것을 습관에 맡긴다. 어느 시대든지 학교 교사나 입법가들은 주로 습관에 의지해 일을 처리한다. 습관은 모든 일을 쉽게 만들고 익숙해진 관례에서 벗어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위의 두 구절은 습관에 관한 언급으로 현대 심리학이 밝혀낸 바와 일치한다. 어느 시대에나 관찰을 바탕으로 하여 올바른 추론을 해 내는 사람들이 있다. 문제는 사전, 사후를 막론하고 현실의 검증을 거치지 않은 추론에만 의존하는 사유이다.


Posted by thin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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