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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제는 과학자가 전하는 '성선설'이다. 철학에서 거론되는 성선설 또는 성악설은 단지 사변적 추론에 의한 명제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성선설은 충분한 과학적 설명이 따른다는 점이 다르다. 진화론은 보수, 진보 양 진영에서 모두에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보수 진영에서는 진화론이 위대한 존재인 인간을 동물들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시켰다고 반발한다. 한편 진보 진영은 인간이 지닌 악의 요소들이 유전자에 이미 존재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을 격렬하게 비판한다. 이런 이유로 진화론에 대해 알아보기를 꺼려하는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인간은 선한 존재도 악한 존재도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저자는 성선설을 주장한다. 저자는 진화론자여서 앞의 설명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다만 유전자 결정론이 득세할 때 인간이 지나치게 이기적인 존재로 고정되는 것을 우려하여 타고난 선의 요소를 강조하는 것 뿐이다. 저자는 또 책의 서두에 공자의 '인' 개념을 거론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동양 철학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왜 뜬금없이 공자의 인 사상을 거론하는지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서는 알 수 없긴 하지만 그게 타고난 선의 요인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으므로 그냥 저자의 취향 정도로 보아주어도 무방하다.

저자는 인간의 사회성에서 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Thomas Scheiling 저서 <갈등의 전략The Strategy of Conflict. 1963>에서 ........  셸링에 따르면 매우 중요한 거래(영원한 사랑의 약속이나 위험한 사업 투자를 통한 상호 이익, 외교관과 협상가의 전략적 위협) 진정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진정성 문제는 얼굴을 갖고 있다. 하나는 상호 간의 장기적이고 책임있는 관계를 위해 자기이익에 기초한 행동 과정(모종의 제안, 동료를 희생시켜 이익을 얻을 있는 기회, 회사 주주에게 거짓 보고를 기회 ) 포기해야 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인 관계를 쌓기 위해서는 일시적, 쾌락 추구적, 근시안적인 자기이익을 초월해야 한다."
"우리는 누가 우리에게 진심을 다하는지 분명하게 확인해야 하며, 장기적 유대관계를 맺을 만큼 도덕적 성향을 갖춘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관계에 충실하고 보살피는 마음을 가질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렇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지,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고 자기이익을 추구하려고 관계를 희생시키지 않을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내야 한다."
"바로 감정이다. 감정 경험의 본질 자체(표면상으로 드러나는 절대성, 뜨거운 열기, 긴박성) 지닌 힘이 자기이익의 근시안적인 계산을 쉽게 압도하여, 우리를 장기적인 유대관계에 반드시 필요한 진정성, 일부일처제, 공정성, 의무와 책임을 존중하게 만든다. 죄의식이라는 마음의 고통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어서 우리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가 가장 아끼는 관계를 복구하게 도와준다. 연민이나 경외감이 안겨주는 강력한 느낌은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하여 손해인지 이익인지 따지지 않고 다른 개인이나 집단을 위해 행동하게 이끌어준다."

철학적 전통에서는 이성을 감정보다 우위에 놓고 추론해 왔으나 진화심리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우리로 하여금 도덕적 행위를 하게 만드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하이트는 수천 세대에 걸쳐 인간의 사회적 진화가 이루어지는 동안 도덕 직관이 날카롭게 발달되어 연민, 감사, 당혹감, 경외감 등과 같이 몸으로 나타나는 감정 형태를 띠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감정은 도덕의 강력한 길잡이인 것이다. 감정은 우리 안에 변화를 일으키며,우리로 하여금 도덕사회의 토대, 예를 들어 공정함에 대한 관심, 의무,  미덕, 친절, 상호성을 보호하게 해주었다. 옳고 그름에 대한 관심이나 선행 능력이 우리 속에 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감정 표현 중에서도 이타적인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열두 가지 감정은 , 혐오, 당혹감, 부러움, 두려움, 행복, 자긍심, 슬픔, 놀람, 그리고 우리가 관심 있게 살펴볼 동정심과 사랑, 감사의 마음이었다."
"동정심과 감사의 마음은 사회관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에 나서게 동기를 부여해준다."
"스테파니 쿤츠Stephanie Coontz <진화하는 결혼Marriage, aHistory> ………  책에서 쿤츠는 우리가 오늘날 결혼생활에서 저지르는 가지 커다란 실수는 바로 낭만적 사랑에 너무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경외감 속에는 자기 자신을 크게 확장시키는 신체적 표현(소름) 연결성(미주신경) 포함되어 있다. 경외감은 자기 표상self-representation 변화시켜 서로를 구분 짓는 것에서 서로를 결속시키는 것으로 바꿔놓는다. 또한 경외감은 지향적인 행동과 접근, 자기 자신에 대한 관점, 쾌락에 관련된 두뇌 영역을 활성화시킨다.경외감이 생기게 궁극적인 진화상의 기원으로 신성한 것은 사회적이다. 우리가 지닌 경이와 공경의 능력은 우리 몸속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다양한 관찰 및 실험에 의해 입증된 사실들을 들어 인간은 선한 존재로 태어났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서두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런 단언이 유전자의 생존 본능에 기초한 이기적 행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결국 이 책의 목적은 진화심리학에서 설명하는 것, 즉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는 결론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선의 요소를 더 부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진화론에 심정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해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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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재검토

독서 2016. 2. 6. 19:59
아마티아 센은 전작 '윤리학과 경제학'에서 주류 경제학이 합리적 선택이론을 바탕으로 수학적 정교화의 길을 가는데 대해, 윤리학을 경제학에 접목시켜야 한다고, 즉 인간의 이타적 본성을 경제학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 범위를 좀 더 좁혀 불평등에 대해 재검토라는 형식을 빌어 그것이 완화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불평등을 이야기한다고 하면 완전한 평등을 주장한다고 섣불리 단정하기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센은 먼저 인간의 다양성을 언급한다.
"인간은 철저하게 다양하다. 우리는 외부 특성(상속재산, 자연적, 사회적 생활환경)만이 아니라 개인별 특성(연령, 성별, 질병에 대한 약성, 물리적, 정신적 능력)에서 서로 다르다. 평등론을 평가하는 일은 이런 폭넓은 인간의 다양성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직관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인간은 다 다르다'라는 명제에 바로 발목이 잡힌다. 그래서 다양성을 먼저 인정한 다음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논의한다.
"전통적으로 정치철학이나 사회철학 또는 경제철학에서 평등론은 특정 공간과 연결되기 때문에 주요 평등주의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은 이런 공간들 하나 (이를테면 소득, , 효용) 평등이다."
"평등의 중요성은 종종 자유의 중요성과 비교된다. 사실상 평등과 자유의 같등에 대한 또는 그녀의 입장은 종종 정치철학과 정치경제학에 대한 그들의 일반적 견해를 보여주는 훌륭한 지표로 여겨졌다. 예를 들어,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반평등주의자로여겨질 뿐만 아니라,정확히 자유에 대한 과도한 관심 때문에 반평등주의자로 규정되기도 한다."
"앞절의 논의에 비추어본다면 우리는 이렇게 자유와 평등의 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해야 한다."
"개인의 복지는 존재의 [ 그대로 '좋음(wellness)'] 이해될 있다. 삶은 상호관련된 행위와 존재로 구성된 '기능' 집합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여겨질 있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의 성취 수준은 개인의 기능 벡터로 여겨질 있다. 적절한 기능은 적절한 영양섭취,좋은 건강 유지, 나쁜 병에 걸리지 않는 것과 조기사망에서 벗어나는 것과 같은 기본적인 것에서 행복한 생활, 자기존중 확보, 공동체 생활에 참여하는 것과 같은 좀더 복잡한 성취수준에 이르기까지 다양할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바는 이러한 기능들이 개인의 존재를 구성하므로 이런 구성요소들을 평가하는 형태로 복지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정확히 어떤 기본구조를 선택하든 간에, 우리는 소득 중심에서 능력중심으로 방향 전환을 함으로써 빈곤 극복이 의미하는 바를 좀더 정확히 이해할 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빈곤구제책의 우선성에 대해 좀더 명확한 지침을 얻을 있으며 명백히 서로 다른 상황에서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부유한 나라에서 빈곤이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이해할 있다. 슬기롭게 자유의 결핍을 중심으로 빈곤을 이해하는 관점은 근본 관심사의 다양성과 논리적 상관성을 갖는다."

이런 주장을 통해 우리는 센이 불평등을 완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센은 불평등이란 불가피한 것이라고 판단해서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주류 경제학의 틈새에서 불평등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소중한 학자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센이 그런 주장을 함에 있어서 실증적 접근이 아닌 관념적 추론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념적 추론의 허무함을 한번 보자.

"사람들이 기아와 말라리아가 없는 삶을 원한다면, 공공정책을 통한 이런 질병의 퇴치는 '그들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있는 자유' 향상시킨다."
"실제로 우리가 이제 '말라리아 없는 상태'로부터의 자유를 성취했다고 말한다면 어리석은 짓이리라. 분명히 그렇다. 그러나 리석은 짓인가? 말라리아가 없는 상태는 부담이 아니며 설령 반사실적으로 우리에게 그런 선택이 주어지더라도 상태를 거부할, 대신에 말라리아를 선택할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센도 그럴 이유가 없다고 인정하다시피 '말라이아 없는 삶'이란 선택의 자유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예도 한번 보자.
"설령 리치맨 씨가 소득이 높아서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있지만 온갖 기회를 놓쳐서 마침내 비참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를 가난하다고 부르는 것은 이상할 것이다. 있고 결핍하지 않게 생활을 꾸려나갈 있는 수단을 갖고 있었지만 자신을 가난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그를 가난한 사람으로 수는 없다."
"수단이 없기 때문에 굶어야 하는 사람과 수단을 갖고 있지만 단식을 선택한 사람이 여기에 해당된다. 사람 모두 마지막에는 굶어서 영양결핍 상태에 빠지게 되겠지만 단식하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수단이 없는 사람- 적절하게 영양을 섭취할 있는 능력이 없는 사람 - 가난하다."
실증적으로 보면 앞에서 든 예들은 모두 관념적으로만 고려될 수 있는 내용들이다. 좋은 삶을 어떻게 정의하든 사람들이 '말라리아가 있는 삶'을 선택할 리 만무하며, 자신의 판단 잘못으로 인해 망한 사람을 들어 불평등이 문제라고 이야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먹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식하는 사람들이 영양결핍상태에 빠질 리도 만무하다.

물론 센이 관념적 추론에 의존하고 있다고 해서 불평등을 바라보는 센의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관념적 추론으로는 불평등을 완화시키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이 때문에 불평등이 점점 문제가 되어 가고 있는 시대에 센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센에 기대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내가 이 책을 읽는데에 꽤 어려움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내가 철학적 수사법에 정통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예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서양철학사를 다시 읽어 봐야 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왜냐하면 철학적 수사법에 익숙해지고 나서 이 책을 다시 읽더라도 결론이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유야 어떠하든 인문학의 길로 이미 접어든 사람들이라면 학계 주류들의 수사법에 익숙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고, 그런 가운데 센의 생각을 좀 더 잘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이 책도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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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마이클 가자니가는 '사회적 뇌', '윤리적 뇌', 그리고 이 책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저작들로 널리 알려진 인지신경생리학자이다. 과학자들은 필연적으로 연구하는 대상에 대해 환원론적으로 접근한다. 세부적인 지식들이 축적되면 그것들을 바탕으로 보다 높은 수준의 통합에 나선다. 저자도 이 경로를 따른다. 앞의 두 책이 환원론에 입각한 신경생리학의 발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 책에서는 거대 담론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기포드 강연이란 것이 있다.
"애덤 로드 키로드Adam Lord Gifford. 철학과 자연신학에 남다른 열정을 지녔던 19세기 에든버러 변호사이자 판사였던 그의 요청과 기부 덕에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은 1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코틀랜드에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강연에서 이야기한 것을 바탕으로 저자가 직접 밝힌 이 책의 저술 목적이다.
"정신과 뇌를 어떻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을지와 관련해 진전하고 있는 바를 내가 보는 그대로 설명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진화론 진영은 크게 인간에 대한 의미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쪽과 의미론을 인정하자는 쪽,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다. 인간과 동물은 같지 않다는 점에서 다르다. 그러나 포유류와 유인원이 다른 것 이상으로 인간은 침팬지와 다른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두 진영이 나누어 진다. 저자는 인간을 유의미한 존재라고 인정하자는 쪽이다. 그러나 선언적으로 하진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를 이 책에서 논리정연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유의미한 존재냐 아니면 단지 동물의 연장선 상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냐를 논의하는 데에 있어서 결정론에 관한 논쟁이 흔히 등장한다. 먼저 결정론이란 다음과 같다.

"결정론은 자연법칙에 따라 조합된 선행 사건이 있어야 인간의 인지, 결정, 행위를 포함한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건, 행동이 일어난다는 철학적 믿음이다."

물리적 구조로서의 뇌는 결정되어 있다는 것을 많은 신경생리학 연구 결과들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이 결정론을 주장한다. 그런데 그 연구 결과들이 축적됨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같이 제공한다.
"인간의 두뇌가 이룬 성과들은 우리가 목적 의식을 가진 중심적 자아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는 좋은 이유다."

뇌의 기능을 검토해보면 물리적 구조(뇌의 크기, 세포 수, 특정 신경세표의 존재 유무 등)도 중요하지만 신경 세포 간의 연결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환경의 영향을 받는 이 신경 세포들 간의 연결에서 창발적 속성이 생겨난다. 창발적 속성이란 복잡계에서 나오는말이고, 복잡계 및 창발적 속성이란 다음과 같다.
"복잡계 complex system 는 상호작용을 통해 부분의 합보다 큰 창발적emergent 속성을 만들어 내고 일단 생성된 속성은 이전의 부분적 속성으로 축소될 수 없는 수많은 체계들로 구성된다."

이런 창발적 속성때문에 몇몇 과학자들은 인간은 유의미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위대한 뇌과학자 데이비드 마David Marr의 말처럼 깃털을 연구한다고 새가 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뇌가 만들어낸 의식 경험 자체의 본질과 관계가 있는데, 인간이 향유하는 정신 상태가 깊숙한 곳에서 벌어지는 신경 간, 세포 간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음과 같다.
"뇌는 그렇게 많은 국소처리장치들을 통해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를 처리하는데 어째서 겉으로는 하나의 통합된 전체로 기능하는 것처럼 보일까?"
"뇌 조직이 엄청난 수의 결정 중추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조직의 한 수준에서 일어나는 신경 활동을 다른 수준에서는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인터넷처럼 명령을 내리는 본부같은 존재가 없다는 것도 아는데 인간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바탕으로 저자도 자유의지, 개인의 자유, 의식, 책임 등과 같은 거대 담론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런데 거대 담론으로 들어가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부터 유래하는 서양의 지적 사유의 전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보니 있는 그대로 설명하기보다는 철학적 사유 중에서 부분적으로 현대에 적용할 수 있는 설명들을 차용한다. 저자는 당연하게도 현대 과학의 역할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도덕적 행위에 대한 선천적인 감각의 존재 여부를 따지는 질문은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 철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이 이 문제를 두고 수백 년 째 대립하는 동안 신경과학자들이 실증적 중거와 도구들을 가지고 우리의 대답에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 전통을 존중하는 태도 또한 버리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인에 대한 공정한 처우에 기반한 정의가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고 주장한 반면 플라톤은 큰 그림을 보고 사회에 대한 공정함이 가장 중요하며 개별 사건에 대한 판결은 이 목적을 염두에 두고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거대 담론으로 접어든 저자의 설명들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는 '당신'이라는 존재는 해석기 모듈(추론을 담당하는 좌뇌의 역할)이 당신의 행위를 최대한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 낸 이야기다. 설명에 포함되지 못한 것들은 거부되거나 합리화된다."창발은 전혀 평형하지 않은 (따라서 임의적인 사건의 발생이 증폭되는) 복잡한 미시적 구조가 (창조적이고 자기 발생적이며 적응력을 찾는 동작을 통해) 스스로 새로운 구조로 조직되어 전에는 없던 새로운 속성을 나타내는 거시적 구조가 되는 것을 뜻한다."내 생각에 의식적 사고는 창발된 속성이다. 신경으로 사고를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상호작용할 때 일어나는 일과 유사한 사고의 현실성이나 추상성을 입증할 뿐이다. 정신은 두뇌로부터 독립된 속성이면서 동시에 완전히 뇌에 종속된 속성인 것이다."

이런 판단을 바탕으로 저자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입장을 드러낸다.
"사람의 행동과 인지적 태도, 근본적인 생리가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또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의식'이 개인적 속성에 속하는 것이라면 사회적 속성에 속하는 것은 자유의지, 사회적 책임 등이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본성은 변함이 없지만 사회라는 바깥 세상에서 행동은 변할 수 있다. 무의식적 의도에 제동을 걸 수는 있다." "우리는 사람이지 뇌가 아니다. 우리는 뇌에서 창발하는 정신이 뇌와 상호작용할 때 발생하는 바로 그 추상적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단언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바로 과학적 삶의 본질이다.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특히 신경과학과 심리학처럼 해석적 성격이 강한 과학에서 변하는 것은 끊임없이 쌓여가는 대자연의 사실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그리고 과학이 발견한 사실들을 논란이 있는 과거의 사유를 차용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면서 책을 마무리 짓는다.
"이 책의 자료를 검토하던 중 정신 과정이 뇌를 제약하거나 그 반대로 뇌가 정신과정을 제약할 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직 개발되지 않은 고유한 언어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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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학과 경제학

독서 2016. 1. 29. 20:10

아마티아 센은 '후생 경제학'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1998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경제학자이다. 여기서 후생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복지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보아도 된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학자 치고는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편인데 복지를 강조하는 경제학자여서 좌파 경제학자들에 의해 국내에 어느 정도 소개가 된 상태이다. 수학적 모델을 정교하게 가다듬는 것에 집착하는 주류 경제학자들 틈에서 복지를 이야기하고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거론한다는 점에서 좌파가 선호할 수 밖에 없는 학자이긴 하다. 나의 윤리적 지향점과도 맞아떨어지는 것이어서 센의 책을 두 권째 읽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는 저자의 주장을 먼저 보고 이야기하기로 하자.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는 아담 스미스라는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런데 그 아담 스미스가 사실을 잉글랜드의 글래스고 대학 도덕철학 교수였다.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인 답게 스미스는 인간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여, 유명한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분업에 의한 생산 효율의 획기적인 증대와 이기적 개인들의 경제행위를 이야기하게 된다. 이 '이기적 개인들의 효율적인 경제 행위'라는 개념이 이후의 경제학의 확고한 이념적 바탕이 된다. 이 개념은 경제가 오직 경제학으로만 연구될 때에는 별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경제학이 점차 범위를 넓혀가면서 사회 현상이라는 점이 부각될 수록 심각한 결함을 드러내게 된다. 바로 인간의 이타적인 행위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전혀 설명할 수 없을 뿐더러 직접 충돌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모순은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데니얼 카너만이 주창한 행동경제학에서 설명이 가능해진다. 행동경제학에서는 경제인을 합리적으로 보지 않는다. 카너만은 원래 경제학자가 아니고 심리학자다. 인간의 심리를 연구한 결과 인간은 결코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혔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을 오직 이기적인 존재로 또는 오직 이타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합리적(여기서 합리적이란 개인의 이익 축구를 극대화한다는 의미) 개인이라는 경제학의 전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스미스도 다른 책 '도덕감정론'에서 '정의의 도덕'과 '자애의 도덕'을 같이 이야기했다. 여기서 '정의의 도덕'이 시장에서의 정당한 교환을 지탱하는 개념이다. 그리고 '자애의 도덕'은 인간의 이타적인 행동을 설명하는 개념이 된다. 결국 스미스는 인간의 행위 바탕을 제대로 관찰했지만 후대의 경제학자들이 자의적으로 합리적 개인이라는 개념만을 가져와서 그것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데에 전력을 기울인 것이다.

주류 경제학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인식되어 왔으나 주류 경제학 내부에서는 대안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마티아 센은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윤리학을 경제학에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센은 경제를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심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서양 철학의 지적 전통에 충실하게 그 기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사실, 경제학은 다소 상이한 두 가지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기원은 모두 정치학과 연관되어 있었지만, 그 방식은 서로 약간 달랐다. 하나는 '윤리학'에, 다른 하나는 '공학'이라 불릴 만한 것에 관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정치학이란 바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그리스 철학에서의 정치학을 말한다. 그리고 센은 주류 경제학의 문제를 "현대 경제학의 특징인 자애심의 결핍"이라고 정의하면서도 서양 철학의 지적 전통에서는 조금도 벋어나지 않는다.
"경제학의 본질적인 성격이 일단 인정된다면, 경제학의 윤리학적 기원과 공학적 기원 모두가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나로서는 행위동기와 사회적 성취에 대한 윤리학적 관점이 제기하는 심오한 질문들이 반드시 현대 경제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러나 동시에 공학적 접근이 경제학에 줄 것이 똑같이 많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센도 경제학자로서 주류 경제학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윤리학을 동원한다.
"윤리적 성찰을 빠뜨린 채로 인간동기를 기이할 정도로 편협하게 규정하는 것조차도 경제학에서 중요한 수많은 사회관계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유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경제학에 대한 비윤리적 접근이 반드시 비생산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냉정하게 합리적인 유형의 인간들이 우리 교과서를 채우겠지만, 세상은 훨씬 다양한 것이다."


결국 센도 인간이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 것은 아니고 이타적인 요인도 경제학에서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논리 전개가 전적으로 사변에 의존하고 있어서 문제다. 몇 구절을 보자.
"실제 행위가 합리적 행위와 동일하다는 가정을 방어하기 위해 언급될 수 있는 것으로는, 이 가정이 비록 오류를 범할 수는 있겠지만 어떤 특정한 형태의 비합리성을 가정하는 다른 방법은 더 심한 오류를 범할 것이 확실하다는 주장이 있다."
"주류 경제이론에는 행위의 합리성을 정의하는 두 가지 지배적 방법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는 합리성을 선택의 내적 일관성으로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합리성을 자기이익의 극대화와 동일한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자기이익 극대화는 비합리적이지 않다거나 또는 적어도 반드시 비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주장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이익 극대화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은 반드시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주 터무니 없어 보인다."
"보편적 이기심을 실제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도 잘못일 수 있지만, 보편적 이기심을 합리성의 요구조건으로 이해하는 것은 명백하게 부조리한 일이다."
이런 논리 전개는 오랫동안 사색해 온 윤리적 관념에 대한 설명으로는 내적 일관성이 있을지 모르나 경제학이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센도 다음과 같이 모호한 말로 결론을 내려 놓았다.
"나는 후생경제학이 윤리학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본질적으로 풍부해질 수 있고 그리고 윤리학 연구도 역시 경제학과 더 긴밀한 접촉을 가짐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설득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예측적이고 기술적인 경제학조차도 행위결정과정에 후생경제학적 성찰을 위한 여지를 더 많이 만들어둠으로써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세 가지 작업 중 어느 것도 특별히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작업들은 뿌리 깊은 모호성을 안고 있으며, 문제들 중 많은 것들은 본래부터 복잡하다. 하지만 경제학을 윤리학에 더 가까이 접근시키려는 근거가 이 일이 하기에 쉬울 것이라는 점에 있지는 않다. 그 근거는 오히려 그러한 작업에 따른 보상에서 찾아야 한다. 그 보상의 크기는 꽤 기대해볼 만할 것이다."

사변적인 논리 전개가 허무한 것은 다음과 같은 예를 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자신의 앞에 놓인 두 개의 건초더미 중에서 어떤 것이 더 좋은 것일지를 결정할 수 없어 굶어 죽는 뷰리던의 당나귀(Buridan's ass)는 합리적으로 건초더미 중 어떤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굶어 죽는 것보다는 어떤 것이라도 선택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나귀는 다른 건초더미가 아닌 바로 어떤 하나의 건초더미를 선택할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따라서 둘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되었을 것이다. 합리적인 공공의사결정은 이처럼 부분적으로만 정당화되는 선택을 따를 수밖에 없다."
어떤 생물도 선택을 못해 굶어 죽는 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예를 들어서 논의를 전개하기 때문에 잘해야 제자리를 맴도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1990년대면 문화진화론이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센은 거기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마도 센이 주류 경제학의 지적 전통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것은 센을 탓할 일은 아니다. 진화란 다양한 변이들 중에서 환경에 적응한 것들만이 살아남는다. 문화의 발전도 진화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난 만큼 센의 생각도 하나의 변이로서 등장했다가 적응하면 살아남을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진화론에 바탕하지 않은 사변적 논의는 머지 않아 도태될 것이다. 그렇지만 주류 경제학이 등한시하는 복지나 불평등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학자여서 개인적으로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활동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한 독서 추천은 중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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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굳이 분류하자면 자기계발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성공한 케이스들만 나열하고 그걸 분석의 형식으로 정리한, 허무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책들과는 다르다. 저자는 왜 수평적 사고가 필요한지를 의식의 작동 메카니즘에서 찾는다.
"의식은 그것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패턴(pattern-사고, 행동, 글 따위의 유형이나 양식)을 만들어낸 후 그것을 파악하고, 반응하고, 사용한다. 그러한 패턴은 사용될수록 더욱 확고해진다."
"패턴을 사용하는 시스템은 정보를 다루는 매우 편리한 방식이다. 일단 패턴이 구축되면, 그것은 특정한 코드code를 만든다. 코드는 도서관에서 책을 검색할 수 있는 분류번호 같은 것으로, 패턴과 관련된 모든 정보를 기억할 필요없이 패턴에 붙은 코드만 기억하고 있으면 원하는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의식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의식은 패턴을 결합하거나 추가하기 쉬운 반면 패턴을 재구성하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패턴이 주의(attention)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한편 통찰력과 유머는 패턴을 재구성할 때 얻을 수 있다. 창의성 역시 마찬가지지만 패턴에서 벗어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수평적 사고는 기존의 패턴에서 벗어나고, 자극해서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의식의 과정을 수직적 사고라고 하고 그것의 보완 요소로서 수평적 사고를 강조한다.
"사고의 목적은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을 통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의식이 고정관념이라는 패턴을 만들기 때문에 기존의 패턴을 재구성하지 않는 한 새로운 정보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 전통적인 사고방식은 패턴을 어떻게 정교하게 가다듬어 정확성을 확보할 것인지를 가르쳐 줄 뿐이다. 하지만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아이디어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지 못하는 한 정보를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없다. 수직적 사고는 개념에 대한 패 턴을 향상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반면 수평적 사고는 패턴을 재구성(통찰력)하고,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데(창의성) 효과적이다. 그러므로 수직적 사고와 수평적 사고는 상호 보완적이다. 두 사고 모두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수평적 사고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수평적 사고의 필요성은 의식이 작용하는 방식에서 대두된다. 의식이라고 불리는 정보 처리 시스템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분명한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한계는 시스템의 장점과 구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들 모두 시스템의 본질에서 직접 발생했기 때문이다. 손해없이 이익만 챙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평적 사고는 장점을 누리면서도 이런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필요성의 강조와 더불어 수평적 사고를 증진시키는 다양한 훈련 도구들을 책에 제시해 놓았다. 그런데 이 훈련 도구들을 주로 교육자의 관점에서 제시되어 있다. 문제는 독자들의 대부분 교육자의 입장이 아니라 교육생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수평적 사고의 필요성에 충분히 공감하더라도, 이 책은 주로 조직의 관리자들이 조직 구성원들로 부터 다양한 대안을 유도해 낼 때 유용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도 수평적 사고가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직적 사고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수평적 사고가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평적 사고의 생산적인 가치를 받아들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에게 엉뚱해 보이거나 잘못되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책에는 브레인스토밍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이 브레인스토밍은 한 때 붐을 일으켰다가 지금은 그다지 효용이 없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저자도 수평적 사고와 관련하여 브레인스토밍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그걸 강조하지는 않는다.
"브레인스토밍은 수평적 사고를 장려하는 형식화된 설정으로서 가치가 있다. 브레인스토밍은 그룹 활동이기 때문에 서로 자극해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브레인스토밍은 특별할 것이 없다."

의식의 작동 메카니즘에서 부터 출발하여 수평적 사고를 강조하긴 하지만 수평적 사고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이미지 디자인이든 기계장치의 디자인이든 각종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은 생각의 초기 단계에 이 수평적 사고를 하고 있다. 나이가 어릴 수록 수평적 사고가 더 강하기도 하다. 그러니 디자인 분야로 나아가려하는 사람들이거나 코미디언들처럼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고 싶은 사람들은 이 수평적 사고 훈련을 열심히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관리자들이 이 수평적 사고에 대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조직 구성원들이 수평적 사고를 훈련했다 하더라도 그걸 드러내기가 힘들다. 그러므로 이 책은 수평적 사고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이야기하기가 주저된다. 읽기에 부담스러운 책은 아니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볼 가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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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이 이발사에게 들려준 이야기 - 로버트 월크

독서 2016. 1. 24. 20:32
이 책은 과학 상식을 이야기해준다. 물체의 운동, 빛, 열, 지구 과학, 천문학, 물, 이런저런 사물을 각각 한 장으로 할애하여 그와 관련된 자연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제목에서처럼 아인슈타인이 한 이야기는 아니고, 물리학의 천재가 과학에 어두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 줄 법한 이야기를 저자가 풀어놓았다. 이런 상식은 중고등학생용이라는 막연한 관념이 만연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자연 현상의 영향 하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그 자연 현상에 관한 설명을 상식적으로라도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또 물리학으로 대변되는 과학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존재하지만 과학이 어려운 것은 자연 현상을 수학적 언어로 표현해 두었기 때문이지 자연 현상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고 그냥 알면 되는 것이다. 수학은 천재적인 과학자들 또는 수학자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자연 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실험하여 그 배후에 있는 법칙성을 찾아낸다. 따라서 과학 상식이란 다름아닌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이원론이 지배하던 시절에는 과학은 물질을 다루는 학문, 인간의 정신 활동을 통해 나오는 철학 인문학은 형이상학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이 그런 분류법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것은 뭔가 인간 정신에서 나온 것은 심오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의 정신 활동도 결국은 뇌의 활동이라는 것이 정설이 됨에 따라, 그 전에는 철학, 인문학에서 주로 다루었던 관념들도 과학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그러므로 과학 상식은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니고 또 이학, 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다.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자연에는 2개의 성질이 항상 균형을 이룬다." 이것은 에너지와 엔트로피에 대한 내용에서 나온 것이지만 인간에 대한 것도 보면 이성과 감성,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 등 현상으로 보면 2개인 것 같지만 그 두개가 반드시 균형을 이룸으로써 하나의 현상을 만든다는 점에서 둘이라기보다는 하나라고 보아야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자연 현상도 이러하고 인간의 뇌도 그것을 둘로 인식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에 이원론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진화라는 이름으로 결국 이원론을 돌파했다. 그러니 이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이제는 과학을 가까이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공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물리 현상 모두를 알고 있지는 않으므로 가볍게 읽어 보아도 좋다. 뭔가 있어 보이는 인문학 관련 서적들보다 이런 책들이 더 권장되어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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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1.25 17: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thinknew 2016.01.26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티스토리 사이트가 허용하는 광고라면 나도 거부할 이유는 없을 것 같네요. 본격적으로 광고를 개재할 수 있는 절차를 알려주세요.

아이디어 대 폭발 - 제임스 애덤스 (전자책)

독서 2016. 1. 17. 20:29

우리는 일상 생활을 하는 가운데 많은 문제에 부딪히게 되고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순간에 문제 해결을 좀 더 창의적으로 하는 방법에 대해 심리학에서 밝혀낸 결과들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책의 서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할 때면 사람들은 자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번째 해결책을 선택해 실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에 단점이 있다면 낭패틀 보거나 처음보다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있다는 사실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아이디어 혹은 개념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방식을 션택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

저자는 문제를 인식하는 단계를 개념화로 정의한다.
"우리는 개념화 다시 말해 아이디어틀 떠올리는 과정에 집중하게 된다."
이 개념화 단계에서 창의적 아이디어들이 많이 필요하고, 그래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드러내는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들을 심리학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 우리가 다듬어지지 않은 형태로 사용할 있는 자료를 모두 처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정신은 구조, 모형, 고정관념에 크게 의존한다. 이는 습관의 일부이며 무리다. 습관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처리할 없을 것이다."
"지각(감각 인식) 고정관념화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불완전한 자료를 완성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조합을 인식할 경우 지각 고정관념화는 심각한 장애가 된다. 창조성이란 종종 외관상 분리된 부분을 효과적이고 유용한 전체로 결합하는 일이다. 하지만 부분에 대한 판에 박힌 개념은 부분들이 새로운 전체로 결합해 완전히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도록 막는다."
"판단(개념화 단계에서의 아이디어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리 녹록하지 않다. 비실용적이고, 비현실적이고, 경박하고, 결함이 있고, 사회적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모든 것을 엄격하게 비판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련 생각이 우리 정신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건물 지붕을 깃털로 덮거나, 자동차를 가마로 대체함으로써 공기 오염을 줄이거나 어쩌면 범죄틀 줄이기 위해 헤로인을 합법화시키는 방법을 생각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진정으로 창조적인 사고가가 되려면 우리의 정신이 이런 아이디어는 물론이고 이보다 황당무계한 아이디어를 떠올릴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저자는 우리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마주치게 되는 이분법적 접근 태도에 대해서도 경고의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과학은 논리가 통제하는 과정(오른손, 좌뇌) 획기적인 발견(주로 왼손, 우뇌) 모두 의존한다."
"미학을 불편해 하는 공학도는 상당히 비인간적이고 형편없으며 나아가 팔리지도 않을 장치를 만들 있다. 양적 사실과 통계를 사용하지 않는 환경 운동가들은 환경 문제의 효과적인 해결책을 설계하는 과정에 그다지 생산적인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분석이나 통합만을 이용한다면 곤경에 처할 것이다. 등식을 때처럼 순수한 지적 활동으로 분석을 수행할 있다. 그러나 인간이 분석하는 전반적인 목적은 통합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드는 있다. 미지와 불확실이 존재하는 분석에서 문제에 맞춰 분석 기술을 조절하거나 필요할 경우 새로운 분석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통합이 필요하다. 그런 한편 분석을 이용해 통합 과정에 무한한 도움을 얻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제목에 아이디어라는 단어가 나오고 내용 중에 창의성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언급되므로 독자들에게 자기계발서로 읽힐 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심리학에서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문제 해결에 대한 좀 더 합리적인 조언을 할 뿐 여타 자기계발서들 처럼 허무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는다. 과학자들의 글이 좋은 것은 어디까지는 밝혀졌고, 그 이상은 아직 미해결의 영역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혀둠으로써 독자들을 현혹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창조적 사고에 대한 완벽하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설명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창조성에 관한 문서 자료는 지난 25 동안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산더미처럼 많은 읽을거리에서 단순한 것부터 정밀한 것에 이르기까지 창조적 행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수많은 가설을 발견할 있다. 개인과 집단, 조직의 창조성을 향상시킬 수많은 기술이 존재하며 가운데 대부분은 일부 사람에게만 효과적이다. 모든 사람에게 효과적인 기술은 드물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창조성에 대한 배려심이 있는(그런 한편 배려심이 없는) 보고서가 있다."
"이런 자료에는 수많은 추측과 다양한 가치 판단들이 담겨 있는데 독자들은 이를 자세히 검토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설득력이 있는지에 따라(혹은 자신의 의견과 가치관을 뒷받침하는지에 따라) 받아들이거나 버려야 것이다. 컴퓨터틀 이용하면 많은 자료틀 얻을 있는 데다 분류하기도 쉽다. 여러 가지 이론을 접할 완벽하게 이해되는 주장이라도 모두 의심하라. 창조성 '기술' 경우 자신에게 '적합하게' 보이는 것을 찾고 전혀 노력하지 않아도 즉시 천재가 된다거나 무한한 부를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기술은 모조리 의심하라."

심리학이 과학의 영역에 확고하게 진입해 있지만 여전히 암묵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해석에 나가야 하는 것들이 꽤 되고 아이디어라든가 창의성이라는 개념들은 확실히 그러하다. 그래서 이 책도 내용의 전개가 일관성있게 진행되기 보다는 왔다갔다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번 읽어볼 가치는 충분하다. 강력 추천은 아니더라도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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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1.17 22: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TRIZ같은 방법론을 옹호하는 책들은 창의력은 과학이며 훈련으로 계발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런지는 솔직히 의문스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즈를 소재로 쓴 소설 '트리즈, 천재들의 생각패턴을 훔치다' 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만...

    • 검은양 2016.01.18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책에서도 문제 해결의 첫단계로 개념화 단계에서 창의성을 증진시키는 훈련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문제는 그 훈련 자체가 하나의 과제라는 것이지요. TRIZ도 그렇고 마인드 맵도 그렇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 레슬리 스티븐슨 & 데이비드 헤이버먼

독서 2016. 1. 11. 22:19


이 책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생각의 역사를 정리한 책이라기에 관심을 가지고 손에 잡았지만 서문만을 읽고 그만 두었다. 그 이유는 서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사적 간주곡이라는 두 장을 추가함으로써 이 책의 무게 중심도 이전 판에 비해서는 좀 더 과거 쪽으로 쏠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나쁠 것은 없으리라고 본다. 요즘에는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최신의 과학 연구나 인기 있는 이론에만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미래만을 내다보고 달려가다 보면 과거의 지혜를 잊어버림으로써 - 혹은 단순히 무시함으로써 - 편협한 현재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저자는 서구의 사상의 전통에 충실하다. 그래서 정신과 육체를 별개로 보는 이원론을 전제로 한 서구의 사상의 전통에서 출발점은 거의 항상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그리스 철학의 시조들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정신과 육체가 별개의 것이라는 이원론을 확고하게 폐기시킨 오늘날, 이원론을 바탕으로 한 사고의 전개는 오류일 따름이다. 그런데 저자는 인간의 본성에 관한 생각들을 10개의 장으로 나눈 다음 고작 한개의 장에 과학에서의 진화론을 할당해 놓았다. 그 말은 물질을 다루는 과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 단지 생각의 여러 갈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동안 진화론에 대한 공격의 선두에는 거의 항상 종교가 있었다. 그러니 소위 말하는 인문학자들은 그 싸움을 불구경하듯 보면서 진화론에 입각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발견들을 '형이하학'이라고 치부할 뿐이다. 그러나 종교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를 인문학도 같이 가지고 있다. 진화론이 더 많은 것을 설명하면 할수록 그동안 사상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2천년 가까이 지탱되어온 것이 존립 근거를 상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으면서 자랐다. 나는 공학도여서 인문학에 대한 동경이 내내 있었다. 그래서 철학 사상에 관한 책을 적지 않게 섭렵했다. 또 종교에 귀의한 적도 있어서 특히 기독교에 관한 책도 제법 읽었다고 할 수 있다. 그 많은 독서를 통해서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항상 존재했으니 그것은 '진리란 무엇인가?'였다.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진리를 추구해야 한다고만 할 뿐 진리가 무엇이라고 이야기하는 곳은 없었다. 단지 신의 권위를 빌리거나 그 시대의 사회적 권위자의 권위에 기대어 '진리란 이런 것이다.'라는 선언만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같은 과정을 밟고 있지만 어느 때의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했고, 또 이어지는 생각은 이런 것이었고, 이런 식의 논의가 끝없이 이어질 뿐 한편으로 보면 그럴듯하나 다른 편에서 보면 모순인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이즈음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해 보자. '영원한 본질'이란 과연 무엇인가? '선'과 '악'은 무엇인가? '도'란 과연 무엇인가? '이성'이란 무엇인가? 수천년 동안의 사상사에서 무수히 많은 현인들이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하려 했으나 큰 틀에서 서양의 경우 그리스 철학, 동양의 경우 공자, 맹자의 선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란한 수사학만 발전했을 뿐 여전히 그 먼 옛날의 논의를 답습하고 있을 뿐이다.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도 꽤 오랫동안 그 서구의 전통이라는 틀에서 벗아나질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서구의 사상적 전통에 기대지 않고, 과학적으로 규명된 사실만 가지고도 이원론을 폐기 처분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인간의 본성에 관해서도 논할 수 있게 되었다. 프란츠 부케티츠가 '자유의지 - 그 환상의 진화'에서 언급했듯이 '자유의지'라는 관념이 환상이긴 하지만 그 환상이 한동안 인간에게 필요했기 때문에 문화 진화의 과정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았다고 했다. 철학 사상의 전통이라는 것도 이제와서 보면 비록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이긴 하지만 의식을 가지고 있고 호기심이 강한 인류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을 것이고 또 그래서 오랫동안 존재해 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상의 전통이라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는 지금 그 전통을 여전히 따를 수는 없다.

또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좀 이상한 제목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교양을 쌓은 사람들은 안다. 불행하게도 교양을 쌍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고 있으나, 교양인들은 교양이란 무엇보다 '오리엔테이션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양을 쌓았다는 것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을 줄 안다는 것, 즉 그것들이 하나의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요소를 다른 요소들과의 관계들 속에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교양이 있다는 것은 어떤 책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신속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며,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책을 다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 능력이 뛰어날수록 문제의 책을 읽을 필요성이 덜해진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제대로 읽지 않고 대충 훓어본다고 해서 책에 대한 평을 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제 읽지도 않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가 되었다. 고전을 읽으면 읽지 않는 것 보다는 더 좋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고전을 많이 읽으면 말과 글이 풍성해지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고전을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과거의 지혜를 잊을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으나 그 우려가 방향 설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제는 과학과 인문학의 구분이 무의미해지고 있으므로 과학책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관한 타당한 설명을 하는 그런 책들을 더 많이 읽어야 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옛날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가 궁금한 사람들이라면 철학사 읽듯 이 책을 한번 읽어볼 가치는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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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1.11 22: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진리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는 별로 관심없어요... 그런 질문에 관심있었다면 종교를 가졌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종교에 대한 책을 좀 본 결과 교리 자체가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다른 종교들과 싸우려고만 해서 그다지... 특히 기독교가 그런듯... 오히려 '내가 왜 사는가' 에 관심이 많았던듯 해요.

사회생물학 논쟁 - 프란츠 부케티츠

독서 2016. 1. 10. 20:15


사회생물학은 1970년대 중반 에드워드 윌슨이 곤충들의 집단 행태의 연구를 바탕으로 인간도 생물계의 일원이라는 주장을 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학문 분과이다. 저자가 언급하는 사회생물학이란 다음과 같다.
"총괄하면 다음과 같이 간추릴 수 있다. 사회생물학은 '호혜적이타주의'와 '유전자의이기주의'를 모델로 하여 사회적 행동의 많은 현상들을 명쾌히 설명해 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말은 사회생물학이 절대적인 설명을 제시할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지는 않다. 진화 내지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 행동을 연구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할 뿐아니라 발견의 기법이라는 측면에서도 대단히 의미가 깊다."
"따라서 우리는 사회생물학과 뜻을 같이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사회적 행동과 여러 양태들은 진화를 거치면서 생성되었고 생물은 일반적으로 집단을 형성함으로써 선택에 있어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그리고 계속 점하고 있다). 또한 집단 내에서의 (사회적) 행동에 수반되는 다양한 전략들(가령 이타적 행위 따위)은 개인과 집단 모두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일종의 생존 전략으로 해석될 수 있다."

즉 저자는 사회생물학을 지지하면서 사회생물학이 불러일으킨 반향에 대한 쟁점들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사회생물학은 문화의 진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 먼저 대두된 논쟁이다. 그래서 진화론 진영 내에서도 문화진화론자들과 환경주의자들로부터 유전자 결정론에 너무 경도되어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비판들에 대해 저자는 그 이후 이루어진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여 결론을 내린다.
"동일한 근거를 가진 두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하나를 택해야하는 어려움을우리는 딜레마라고 한다. 인간이라는 것 자체가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의 딜레마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물들과 다를 바 없는 본능과 충동을 부여받고 있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본능적 삶을 초월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사려할 줄 알뿐아니라, 자기 자신의 근본에 대해 묻기도하고 자신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의식적으로) 반성하는 능력도 갖춘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가장 간단한 그래서 우리의 느낌에 딱 맞아 떨어지는 대답은 이렇다. 인간의 도움없이 생겨나서인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이 있기 전부터 존재해 온 모든 것이 자연에 포함될 수 있는 반면, 인간이 창출한 것, 인간의 모든 신체 외적인 표현물들을 전부 포괄하는 것이 문화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생물과 다름없이 (생물학적) 진화를 거쳐 생성되었고 이 진화의 조건에서 신체적 발달을 이룩해 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문제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문화를 발달시키는 능력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 생물학적 요인들에 의해서 결정되는가 하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생물학주의는 (주로 사회/문화적 영역에서 나타나는)제반 현상들을 생물학적 사실, 이론, 모델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에 반해 문화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신념은 이러하다. 사회적, 문화적 여러 현상은 생물적 요인들과 무관하며 인간은,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사회문화적 요인들에 조건지어져 있기 때문에 생물학은 사회과학 내지 문화과학의 영역으로부터 배제되어 마땅하다."
"생물학주의와 문화주의가 제 나름대로 야기했던 실제적(정치적) 결과에 대해서는 일단 생각하지말자. 우리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유전인자/환경’, ‘생물학적 결정/사회문화적결정’을 둘러싼 논쟁의 결말은 결국 인간상의 분열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 자연이냐 아니면 문화냐, 이것이 문제였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둘 중의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이러한 확신은 경험적 연구 결과보다는 이데올로기가 낳은 조급한 결론과 더 잘 어울린다.
  물론 인간상의 분열이란 것은 서구정신사가 자연과 정신, 몸과 마음, 그리고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사이에 곧잘 그어놓던 경계선의 한 양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구획 지음의 여파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이것 때문에 두개의 '하위문화'가 형성되었고, 이들 '하위문화'들은 결국 종합대학을 각 단과대학들로 정연히 구분하는 작업에 반영되었다. 세계는 이제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경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자연현상에 대한 진술은 자연과학이 담당했고, 우리가 문화라고 부르는 것은 인문과학의 몫으로 돌려지게 되었다”
"나는 포겔Vogel(1986)이 생명발생적 진화와 전통발생적 진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생물체의 진화와 (사회) 문화적 진화 사이의 차이를 정말 명쾌하게 구별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포겔은 생물체의 진화나 사회문화적 진화나 다 같이 정보의 획득 및 저장과 전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전제에서출발하면서도, 각각의 정보 전달방식에 따른 차이점만큼은 분명히 부각시키고 있다(Oeser1987, Wuketits 1988c, 1990 참조). 생명체 진화의 경우, DNA 형태의 유전자로 코드화된 정보는 생식과정을 통해 세대에서 세대로, 항상 한쪽 방향으로만(부모로부터자식에게) 전달된다(생명발생적 정보 전달). 사회문화적 진화의 경우에 정보는 사상이나 지식의 형태를 지니고 개인적으로 수집되어뇌 속에 저장되거나 어떤 물질적인 전달매체(토기나 책 등)에 기록됨으로써 다른 개인에게 전해지는 것이다(전통발생적 정보 전달). 따라서 사회문화적 진화에 있어서의 정보 전달은 생명체 진화의 경우보다 신속하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왜냐하면 그때그때의 정보가 언어나 문자를 통해 매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개인에게 전달될 수 있기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 영역에 있어서의 정보는 다방향으로 전달될 수 있는데, 그것은 매번 신세대가 구세대로부터 정보를 받아들이고배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반대의 경우도 성립될 수 있기때문이다(Diettrich 1989)."


저자는 사회생물학이 논쟁의 한가운데 서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논증들을 이데올로기적 배경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를 두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생물학적으로 주어져 있는 조건을 고려하지 않는 윤리학은 따라서 공중누각에 불과하든지, 아니면 결국 자연에 대한 폭력을 초래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매우 위험한 것일뿐이다."
"특정한 학문분과에서 얻어들인 우리의 본질에 관한 특정한 시각들이 무시되어서는 안되며 '절반의 진리'를 유일무이한 진리로 생각하고 그 위에 이데올로기를 구축해서도 안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자는 사회생물학에 대해 윌슨이 사회생물학을 처음 주장할 때보다 훨씬 세련된 결론을 내린다.
"진화가 우연과 필연, 자유와 계획의 복합적인 교차 양상으로 나타난다는것이며(Riedl 1976, Wuketits1988c), 인간의 발전에 있어서 대략적으로나마 정해져 있는 것은 생물학적 한정조건일 뿐, 그 세부적인 발달 양상들은 아니라는 점이다. 자유라는 오래고 존귀한 이념이 다소라도 지켜질 가망이 있다면 바로 이런 이유때문일 것이다."
"유전자의 생존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욕구의 다양성이 우리 삶을 특징짓는다면, 그럴수록 우리는 인간 존재의 어떤 속성들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 사회생물학은 이러한 생물학적 지식, 말하자면 우리 자신에 대한 생물학적 지식의 폭을 넓혀왔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이러한 지식들은 아주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의 본성 대신 유전자만을 그려 보여주는 환원주의적 인간상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사회생물학을 통해 생명발생적 진화와 전통발생적진화, 생물학적 진화와 문화적 진화 사이와 상호관계를 밝히려고 노력한다면, 유전자를 퍼뜨리는 기계적 원리 '이상의것'이 있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설사 인간의 특성이 유비를 통해서든 메타포를 통해서든 유전 기계로 그려질 수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 오로지 유전기계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 항상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은 복잡한 문화를 창조해 낸 존재다. 그것은 생물학적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었지만 인간을 생물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로 만들기도 했다. 인간의 이러한 고유성과 독자성을 규명하는 작업은, 애초부터 인간 존재를 한 가지 측면으로만 환원시키기로 마음을 굳히는 것보다 확실히 더 중요하고 더 합목적적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사회생물학의 결론 뿐 아니라 인간의 진화의 문제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린다.
"호모사피엔스가 반드시 살아 남아야만 될 이유는 진화의 그 어느 곳에도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들 앞에 존재했던 수 많은 다른 종들처럼 그들 역시 얼마든지 멸종해버릴 수 있겠지만, 설사 그렇게 된다 해도 진화의 역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화과정을 스스로 조정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은 비범하며 인간에게만 고유하게 주어져 있다. 결단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여기에 내가 인용한 것은 책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이 요약에 의존해서는 저자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의 다른 책 '자유의지 - 그 환상의 진화'와 '도덕의 두 얼굴'과 함께 반드시 읽어보야할 책이다.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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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사회생물학, 유전자와 문화의 공진화,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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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아하자 2016.01.10 22: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솔직히 어려운 책일 것 같아요... ㅠㅠ

    • thinknew 2016.01.11 06:4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과학 분야의 학술 서적이어서 진화론에 관한 예비 지식이 없으면 어렵습니다. 그래도 진화론에서 부터 출발하여 사회생물학 논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인간의 본성에 관한 틀을 근본적으로 바꾼 논쟁이어서 차근차근 따라가 볼 필요가 있습니다. 책을 직접 접하기가 어렵다면 다음 사이트에 이 글과 비슷한 방식으로 여러 책을 요약해 두었으므로 그걸 보고 책을 직접 읽어볼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http://www.egloos.com/thinknew

도덕의 두 얼굴 - 프란츠 부케티츠

독서 2016. 1. 9. 14:38


이 책은 결론을 미리 언급하자면 인간의 본성이 진화론에 의해 얼마나 설명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기록이 존재하던 때부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이전 부터이겠지만) 도덕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인간의 인식의 중심에 있었다. 그 이후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도덕에 관해 논쟁한다. 저자의 다른 책 '자유의지 - 그 환상의 진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진화심리학(저자는 진화윤리학이라고 표현한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도덕의 문제도 모두 설명되었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모두 설명되었다는 것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더 자세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진화론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설명이 등장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가 언제나 들을 수 있는 한탄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오늘날 도처에서 가치가 타락했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러한 탄식엔 그 근거가 없지 않고, 실제로 도덕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드러나기도 한다. …… 하지만 유념하시라. 어떤 시대에서도 도덕이 실종되었다고 진단되지 않았던 시대가 없었고, 도덕 없음을 탓하는 경고의 집게손가락은 고대부터 줄곧 치켜져 왔음을."
이 말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도덕의 문제가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진화심리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도덕의 바탕을 이루는 인간의 본성이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인간은 본성상 '선'한 존재도 아니고 '악'한 존재도 아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명령이 요구하고 있는 바에 따르는 존재일 뿐이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의 문제가 진화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느 과학철학자들처럼 도덕의 문제를 논하면서 서양의 철학적 전통에 기대는 헛수고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도덕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가를 간략하게 언급할 뿐이다.
"고대 이래 무수한 철학자들이 우리의 '당위' 즉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를 어떻게 근거 지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앓아 왔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 당위는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양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저자가 독일의 학자인 탓에 저렇게 간략하게 언급한 후 진화심리학에서 밝혀낸 도덕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덕이란 사회나 결사의 유지나 안정화에 기여하는 모든 규칙들(규범들, 가치표상들)의 총체이다."
"(도덕적) 규칙 없이는 어떤 결사도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도덕 없는 사회가 없듯이 모든 사회에 구속력을 가진 보편타당한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절대적 가치란 없다."
"인간에게 도덕관념은 - 모든 사회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가치들과 규범들을 가지고 있음은- 보편적이지만, 예외 없이 모두가 항상 그 도덕관념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어느 사회에서나 꼭 필요한 행위는 아닐지라도 마땅히 해야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일탈자'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선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먹고 잘 마시며, 안정된 주거, 편안한 일터와 여가시간을 가지고, 친구들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 외의 시간에는 휴식이 허락되는 것을 원한다."


이렇게 설명한 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모든 인간이 어떤 점에서든 가치있는 존재이듯, 인간은 자신의 삶, 자신의 가족, 자신의 개, 자신의 우표수집, 자신의 정원 등 그 무엇이라도 자신의 것은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 위로부터 명령된 도덕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동서양 할 것 없이 도덕의 문제는 인간사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어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무수한 노력들이 모색되었지만 여전히 도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킨 이원론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그렇다. 진화심리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도 물리적 육체인 뇌에서 근본적으로 파생되는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의 문제가 '유전자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다른 책 '사회생물학 논쟁'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지만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 진화를 무시한 일면만 본 것임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가 '절대적 가치'도 부정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의존해 왔던 '위로 부터 명령된 도덕'을 부정하는 것이 도덕을 아예 폐기하자는 뜻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인간이 지금까지 도덕관념을 발전시켜 온 이유를 이어받아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읽힌다.
"이 책의 기본테제는 우리의 도덕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모든 이상주의적인 가치체계와 규범체계는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받아들 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약 사회의 도덕적 요구에 개인을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개인의 요구에 맞추어 간다면, '선'은 여전히 기회가 있다. 우리는 인류 진화와 함께 터득해 온 협력과 상호부조의 성향을 촉진시켜야 한다. 우리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타고난 살인마도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이 '악'에 맞서 승리하려면, 우리 삶을 규정짓는 현재의 사회적 조건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이 자신에게 허용하는 만큼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동서남북에 있는 인간사회의 입안자, 집행자, 개혁가들은 스스로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그들이 인간 본성 일반에 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데서 나온다."
"도덕은 언제나 권력을 정당화하였다. 이 점에 관해 여기서 더 이상의 근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더 높은 가치'를 전거로 끌어오고, 그들이 유지하고 관철할 수 있다고 느끼는 불변의 영원한 법칙들을 원용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에 대한 객관적인 정의란 존재하지 않고, 진보를 인간의 삶의 '개선'과 동일시할 수 있다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다면, '개선' 역시 비판적인 성찰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그리고/또는 종교적인 '세계공식'으로 표현된 위대한 목표를 가졌던 많은 도덕체계가 형편없이 좌초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좌초하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저자가 기대하는 도덕관념은 '도덕적 개인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의 한사람인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l872-1970)은 인류의 불행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자연 재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해악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후자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뿐이다. 즉, 우리 개인 삶의 독자적 가치를 자각하고, 그 독자적 가치를 타인들에 대해서도 인정하며, 만약 타인들이 그들 자신뿐 아니라 타인들의 행복까지도 규정하려는 의도를 표명한다면, 즉각 그들에게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다."
"도덕적 개인주의자는 반도덕주의자가아니다. 그는 성향적으로 타인을 기꺼이 돕는다. 그는 사회적인 교제를 즐기지만,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그는 스스로 뭔가를 시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도덕규정들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 내버려 두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관용적이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을 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관용을 악용하거나 그 자신에 대해 관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에는 그도 더 이상 관용을 보이지 않는다."
"도덕 그 자체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위로 부터'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언제나 숙명적으로 갈등이 결부되어 있는 인간 공동생활의 결과라는 점이다. 추상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덕택에, 인간은 도덕규정들을 자기 자신의 실존과는 분리된 가상의 영역 속으로 투사하여, 그것을 근거지우는 일을 해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감히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문명화된 인간은 분업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도덕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계층이 형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에 대한 믿음과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믿음은 인류에게 많은 고통을 야기하였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은 도덕의 독재에 추진력을 제공해 주었고,인간의 사고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설명은 아무런 근거없이 신 또는 권위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사변에 의해 내려진 결론이 아니다. 진화생물학, 동물행태학, 진화심리학(진화윤리학), 사회생물학 등에서 밝혀낸 많은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내려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정신은 육체와 별개의 작동 원리를 가진 것이라는 신비주의와 결별할 때가 되었다. 진화론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큰 틀에서는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아직 궁금한 것들이 많다. 게다가 현재의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듯 앞으로도 인간은 계속 진화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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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ink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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