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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어머니의 탄생 - 사라 블래퍼 허디

thinknew 2016. 5. 12. 19:19

진화론은 거의 항상 보수와 진보 양측의 공격을 받는다. 보수가 진화론을 공격하는 지점은 인간을 동물과 동급으로 놓았다는 점이다. 한편 진보가 진화론을 공격하는 지점은 유전자 결정론이다. 진보적 여성주의자들이 진화론적 결론을 거부할 것으로 '모성 본능'이 있다. 우리가 직관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고정 관념, 즉 어미는 자식을 돌보는데 헌신한다는 '모성 본능'이다. 워낙 강하게 박혀있는 고정관념이어서 이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여기에 여성 진화생물학자가 도전한다. 바로 사라 블래퍼 허디의 '어머니의 탄생'이다.

저자는 '모성 본능'이 허구임을 이야기한다.

"모성 본능이 무엇이건 간에, 본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을 의미하는 것처럼 자동적인 것은 아니다."
"사회 생물학자 메리 제인 웨스트-에버하드(Mary Jane West-Everhard) 다음과 같이 강경하게 말할 있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오직 유전자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미에서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특정한 상황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유전자도 발현되지 않는다. …… 유전자는 특정한 단백질을 위한 것이다. 이와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은 기본도 모르는 사람이다.""

'모성 본능'을 인정하면 무엇보다도 어미에 의한 영아 살해, 그리고 현대에서의 낙태를 설명할 수가 없다. 어미에 의한 영아 살해는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드문 일이 아닐 뿐더러 수컷에 의한 영아 살해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기 까지 하다. 인간 종도 생물학적으로는 우리가 동물이라고 칭하는 존재들과 다를 바가 없으므로 동물들 뿐만 아니라 인간 종에서도 나타나는 영아 살해 현상을 통합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미가 새끼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성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난다는 '모성 본능' 관념을 버려야만 가능하다.

저자는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이 정치적임을 지적한다.
"임신 중절에 대한 격렬한 논쟁은 어떤 통치 체제나 가부장제, 혹은 기록이 남아 있는 역사 보다도 훨씬 오래된, 여성의 번식을 통제하려는 동기로부터 유래한다."
"여성이 자신의 번식 기회에 대한 통제력과 처지를 개선할 기회 모두를 갖는 곳이면 여성들은 어디서나 많은 아이보다는 삶의 질과 경제적 안정을 선택한다."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이 대중들에게, 그리고 여성들에게 별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진 것은 스테파니 쿤츠가 '진화하는 결혼'에서 지적한 것처럼 산업혁명 이후 남자는 가계를 책임지고 여자는 가정을 책임지는 구조가 정착하면서 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인간 종의 진화가 멈추었다고 주장되는 홍적세에서의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번식을 관리했다.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을 걷어내고 생물로서의 어미가 어떤 존재인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성선택은 전형적으로 개의 구성 소를 포함한다. 요소는 암컷에 접근하기 위한 수컷 경쟁(male-male competition), 그리고 암컷 선택(female choice)이다."
"각각의 어미에게 삶의 과정은 길고 짧고의 여부를 떠나 주로 가장 좋은 자원 분배 방식에 관련된 결정과 분기점의 연속이다."
"어미의 자기희생은 고도로 근친 번식적인 집단, 또는 번식 경력을 끝낼 시점이 가까워진 어미들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전형적이다."
"어머니가 진화적 시간 속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손을 낳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살아남아 번성할 있는 자손을 낳아야만 한다."
"영장류와 같은 종에게는 어미가 바로 환경이거나, 최소한 모든 개체의 실존에서 가장 위험한 생애 단계의 가장 중요한 환경 요소다. 어미의 , 그리고 여기에 보태 어미가 자신의 세계(희소 자원, 포식자, 병원체, 그리고 함께 사는 동종 개체들) 얼마나 다룰 것인가가, 번의 수정이 의미가 있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
"갓난아기에 대한 어머니의 헌신(사람의 경우 '모성애'라는 말로 표현하는 ) 신화도 아니고 문화적 구성물도 아니다. 갓난아기에 대한 인간 어머니의 정서적 헌신은 다른 포유류와 마찬가지로 생태학적,역사적으로 생겨난 상황에 깊게 영향받는다."

이런 주장이 가능한 것은 과학이 한두개의 발견을 바탕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연구 결과들이 종합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성 행동이 발현되게 하는 호르몬의 영향, 어미와 새끼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본성과 양육의 상호작용, 남녀 성비의 문제, 임신 중의 태아도 어미와 자원 경쟁을 벌인다는 점, 젖을 먹이는 것과 젖 떼기가 어미와 새끼에게 미치는 영향, 아기들이 포동포동하게 태어나는 이유, 아이들의 애착 행동에 관한 연구 결과 등을 종합하여 해석한 결과이다.

저자가 이런 위험해 보이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많은 진화론적 발견들이 그러하듯 여성을 끌어내리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형성된 '모성 본능'이라는 관념이, 저자 자신도 일하는 어머니로서 많은 어머니들에게 구속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대단한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계획하려는 단순한 목표를 갖고 있는 평범한 여성이라면, 개인이기보다는 아기의 필요에 매여 있는 보모로서, 아기의 애착이 어머니의 구속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워하게 된다."
또 여성을 '모성 본능'으로 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다양한 차별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에리세 선언' 서명자들은 "진실을 억압하려고 시도하면" 좋은 것보다는 해가 되는 것이 많다고 결론을 내렸다. 1998 무렵의 의사들 역시 어머니의 양가적 성향과 영아 살해에 대해 보다 열린 토론을 요청하고 있었다. 영아 살해에 대한 보고를 억압하려는 시도가 빚어내는 아이러니 하나는 우리가 어머니 행동의 전체 반경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될수록 자민족 중심적인 도덕 평가의 근거, '문명화 ' 사람과 '야만적인' 사람을,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을, 그리고 기타 등등을 구분하는 근거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적으로 어머니를 해체한 후 '모성 본능'의 구속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한다. 그래서 이 책은 여성주의자들에게는 필독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남성들은 이런 내용에 대해 무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 종이 양성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 책은 850여 페이지로 부피도 크고 학술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사변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사실들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어서 읽기가 어렵지는 않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뿐이다. 아무튼 이 책은 강력 추천 목록에 올려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