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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도덕의 두 얼굴 - 프란츠 부케티츠

thinknew 2016. 1. 9. 14:38


이 책은 결론을 미리 언급하자면 인간의 본성이 진화론에 의해 얼마나 설명될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기록이 존재하던 때부터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더 이전 부터이겠지만) 도덕에 관한 문제는 언제나 인간의 인식의 중심에 있었다. 그 이후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도덕에 관해 논쟁한다. 저자의 다른 책 '자유의지 - 그 환상의 진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저자는 진화심리학(저자는 진화윤리학이라고 표현한다.)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도덕의 문제도 모두 설명되었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모두 설명되었다는 것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것은 더 자세하게 알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진화론이라는 틀을 벗어나서 새로운 설명이 등장할 일은 없다는 뜻이다.

저자는 우리가 언제나 들을 수 있는 한탄에 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다.
"오늘날 도처에서 가치가 타락했다는 탄식이 들린다. 이러한 탄식엔 그 근거가 없지 않고, 실제로 도덕이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앞에 드러나기도 한다. …… 하지만 유념하시라. 어떤 시대에서도 도덕이 실종되었다고 진단되지 않았던 시대가 없었고, 도덕 없음을 탓하는 경고의 집게손가락은 고대부터 줄곧 치켜져 왔음을."
이 말은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도덕의 문제가 만족스럽게 설명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에 반해 진화심리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도덕의 바탕을 이루는 인간의 본성이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인간은 본성상 '선'한 존재도 아니고 '악'한 존재도 아니다. 자신의 생물학적 명령이 요구하고 있는 바에 따르는 존재일 뿐이다."

저자는 인간의 정신의 문제가 진화론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여느 과학철학자들처럼 도덕의 문제를 논하면서 서양의 철학적 전통에 기대는 헛수고를 하지는 않는다. 다만 도덕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게 되었는가를 간략하게 언급할 뿐이다.
"고대 이래 무수한 철학자들이 우리의 '당위' 즉 도덕적으로 옳은 행위를 어떻게 근거 지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머리를 앓아 왔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 당위는 다름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양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저자가 독일의 학자인 탓에 저렇게 간략하게 언급한 후 진화심리학에서 밝혀낸 도덕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도덕이란 사회나 결사의 유지나 안정화에 기여하는 모든 규칙들(규범들, 가치표상들)의 총체이다."
"(도덕적) 규칙 없이는 어떤 결사도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도덕 없는 사회가 없듯이 모든 사회에 구속력을 가진 보편타당한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 요컨대 절대적 가치란 없다."
"인간에게 도덕관념은 - 모든 사회는 어떤 종류의 것이든 가치들과 규범들을 가지고 있음은- 보편적이지만, 예외 없이 모두가 항상 그 도덕관념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어느 사회에서나 꼭 필요한 행위는 아닐지라도 마땅히 해야만 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일탈자'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점은 인간이 일반적으로 선한 삶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잘 먹고 잘 마시며, 안정된 주거, 편안한 일터와 여가시간을 가지고, 친구들과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 외의 시간에는 휴식이 허락되는 것을 원한다."


이렇게 설명한 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모든 인간이 어떤 점에서든 가치있는 존재이듯, 인간은 자신의 삶, 자신의 가족, 자신의 개, 자신의 우표수집, 자신의 정원 등 그 무엇이라도 자신의 것은 모두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 위로부터 명령된 도덕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동서양 할 것 없이 도덕의 문제는 인간사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어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무수한 노력들이 모색되었지만 여전히 도덕이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육체와 정신을 분리시킨 이원론을 전제로 한 것이어서 그렇다. 진화심리학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도 물리적 육체인 뇌에서 근본적으로 파생되는 현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덕의 문제가 '유전자 결정론'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다른 책 '사회생물학 논쟁'에서 다시 언급할 것이지만 '유전자 결정론'이라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 진화를 무시한 일면만 본 것임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여기서 저자가 '절대적 가치'도 부정하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의존해 왔던 '위로 부터 명령된 도덕'을 부정하는 것이 도덕을 아예 폐기하자는 뜻이냐 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인간이 지금까지 도덕관념을 발전시켜 온 이유를 이어받아 더 나은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읽힌다.
"이 책의 기본테제는 우리의 도덕적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모든 이상주의적인 가치체계와 규범체계는 실패하게 될 것이라는 판단을 받아들 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만약 사회의 도덕적 요구에 개인을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개인의 요구에 맞추어 간다면, '선'은 여전히 기회가 있다. 우리는 인류 진화와 함께 터득해 온 협력과 상호부조의 성향을 촉진시켜야 한다. 우리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타고난 살인마도 아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이 '악'에 맞서 승리하려면, 우리 삶을 규정짓는 현재의 사회적 조건들을 변화시켜야 한다."
"인간은 자신의 본성이 자신에게 허용하는 만큼의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동서남북에 있는 인간사회의 입안자, 집행자, 개혁가들은 스스로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그들이 인간 본성 일반에 관해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는 데서 나온다."
"도덕은 언제나 권력을 정당화하였다. 이 점에 관해 여기서 더 이상의 근거를 제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타인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더 높은 가치'를 전거로 끌어오고, 그들이 유지하고 관철할 수 있다고 느끼는 불변의 영원한 법칙들을 원용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에 대한 객관적인 정의란 존재하지 않고, 진보를 인간의 삶의 '개선'과 동일시할 수 있다는 점에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다면, '개선' 역시 비판적인 성찰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그리고/또는 종교적인 '세계공식'으로 표현된 위대한 목표를 가졌던 많은 도덕체계가 형편없이 좌초하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좌초하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저자가 기대하는 도덕관념은 '도덕적 개인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다음과 같다.
"20세기 가장 중요한 사상가 중의 한사람인 버트런드 러셀 Bertrand Russell(l872-1970)은 인류의 불행을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는 우리가 막을 수 없는 자연 재앙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해악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후자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방법뿐이다. 즉, 우리 개인 삶의 독자적 가치를 자각하고, 그 독자적 가치를 타인들에 대해서도 인정하며, 만약 타인들이 그들 자신뿐 아니라 타인들의 행복까지도 규정하려는 의도를 표명한다면, 즉각 그들에게 자제를 요청하는 것이다."
"도덕적 개인주의자는 반도덕주의자가아니다. 그는 성향적으로 타인을 기꺼이 돕는다. 그는 사회적인 교제를 즐기지만,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도록 강요당하는 것을 원치는 않는다. 그는 스스로 뭔가를 시작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도덕규정들도 필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손해를 입히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 내버려 두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관용적이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을 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만약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관용을 악용하거나 그 자신에 대해 관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에는 그도 더 이상 관용을 보이지 않는다."
"도덕 그 자체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 '위로 부터'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언제나 숙명적으로 갈등이 결부되어 있는 인간 공동생활의 결과라는 점이다. 추상적이며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덕택에, 인간은 도덕규정들을 자기 자신의 실존과는 분리된 가상의 영역 속으로 투사하여, 그것을 근거지우는 일을 해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감히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문명화된 인간은 분업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도덕의 수호자 역할을 하는 계층이 형성되었다."
"무엇보다도 절대적이고 영원한 가치에 대한 믿음과도 작별을 고해야 한다. 바로 이러한 믿음은 인류에게 많은 고통을 야기하였다. 왜냐하면 그러한 믿음은 도덕의 독재에 추진력을 제공해 주었고,인간의 사고를 왜곡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설명은 아무런 근거없이 신 또는 권위자의 직관에 의존하는 사변에 의해 내려진 결론이 아니다. 진화생물학, 동물행태학, 진화심리학(진화윤리학), 사회생물학 등에서 밝혀낸 많은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내려진 것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정신은 육체와 별개의 작동 원리를 가진 것이라는 신비주의와 결별할 때가 되었다. 진화론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큰 틀에서는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인간은 아직 궁금한 것들이 많다. 게다가 현재의 인간이 진화의 산물이듯 앞으로도 인간은 계속 진화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