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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본성이 답이다 - 전중환

thinknew 2017. 4. 27. 18:01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정신도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된다고 보고, 과학적 방법론, 즉 실험과 검증을 통해 정신의 생물학적 바탕을 규명하는 학문들의 집합체이다. 거기에는 진화생물학, 신경생리학, 고인류학 등이 포함된다. 이 진화심리학의 가장 본질적인 전제는 심신일원론, 즉 정신과 육체가 별개가 아니며, 정신은 물리적 뇌의 물리화학적 작용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더욱 깊이있게 분석되면 될수록, 심신이원론에 바탕한 철학과 종교는 설자리를 잃어간다. 다수의 대중들도 이 점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직관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의 이 직관도 이미 분석해 두었다. 아무튼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정신, 마음, 또는 본성이라고 불리는 것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이어서 사회심리학으로도 쉽사리 확장된다. 여기에 한국인 진화심리학자에 의해 한국 상황을 진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책이 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자이다. 그래서 한국의 사회 현상을 진화심리학에 바탕하여 설명한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사실 아주 특별한 시대를 살고 있다. 진화심리학을 필두로 인간 본성의 과학들이 인간 삶과 사회에 대해 심도 있는 통찰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진보, 보수와 같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것도 다루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과학을 공격하는 불상사가 흔히 발생한다. 그에 대해 저자는 과학의 입장을 명확하게 한다.
"과학은 어떤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설명할 뿐이다. 결코, 그 현상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려 함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의 다양한 사회 현상을 분석하지만 일화를 요약하기는 어려우므로 저자가 분석을 위해 동원한 진화심리학적 발견을 중심으로 요약해 본다.
"왜 보수와 진보라는 개인차가 생기는가에 대해 두 가지 경쟁 가설이 있다. 첫 번째 가설을 따르면, 보수적 성향의 일부분은 전염성 병원체에 대한 방어로 진화했다. 참고로 보수적인 성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통과 규범을 강조하고 외부 집단을 경계하는 사회적 보수, 그리고 자유 시장을 강조하는 경제적 보수다. 이 중에서 특히 사회적 보수 성향이 당사자가 병원체에 감염되는 것을 막아 준다는 주장이다."
"(두번째 가설) 일부일처제적인 성 전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성적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이 확립된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는 것이 이득이다 마찬가지로, 문란한 성 전략을 주구하는 이들은 개인의 성적 자유를 허용하는 진보적인 사회에서 사는 것이 이득이다."


"왜 말하기는 쉬운데 읽고 쓰기는 어려울까? 답은 수백만 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 역사에 있다. 말로써 이웃들과 정확하게 의사소통했던 사람들이 그렇지 못했던 이들을 제치고 우리의 직계 조상이 되었다. 영유아들이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모국어를 습득하게 해 주는 심리적 도구가 진화한 것이다. 반면에 문자는 고작 8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게다가 오랫 동안 문자는 특권층의 전유물이었고 다수 대중의 삶과는 무관했다. 즉, 문자를 잘 배우게끔 설계된 심리적 도구가 진화할 시간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읽기와 쓰기를 학교에서 끙끙대며 배운다."

"같은 정보라면 낯설고 부자연스러운 형식보다는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형식으로 포장했을 때 우리의 오래된 뇌는 더 잘 학습한다."
"청각이나 후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와 달리, 우리는 시각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마치 내가 그 자리에서 체험한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문화권에서 청결한 신체를 도덕적, 영적인 순결과 동일시하며, 불결한 육체를 도덕적 타락과 동일시한다."
"음식에 대해 미리 품은 기대나 지식은 지금 먹는 음식의 맛을 정말로 높이거나 떨어뜨린다."
"어느 사회에서나, 자기가 속한 동아리 내에서 인정을 받으려 애를 더 쓰는 쪽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다."
"최근의 연구들은 십대 남성들이 또래가 보는 앞에서는 더 난폭하게 운전하거나, 약물에 더 탐닉하는 경향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어른들이 볼 때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흔히 옛날이 더 좋았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적어도 인권 유린이 일싱사였던 고대나 중세에 비하면 18세기 후반에 들어서 커다란 진보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진전이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감성적인 측면, 그리고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일반적인 행동 원리를 남들에게만 강요하는 것은 모순임을 파악하는 이성적인 측면의 두 갈래에서 이루어졌다는 핑커의 통찰은 우리 사회에도 적지 않은 울림을 준다."

"진화 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월슨은 복수심은 상대방의 공격을 사전에 억제한다는 뚜렷한 기능을 수행하고자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학교 폭력은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끈덕지게 괴롭힐 만큼 강하고 억센 사람임을 널리 광고하여 결국 또래 집단 내에서 가해 학생의 지위를 높여 주는 기능을 한다."
"이론적으로, 계부모는 친부모와 다르리라고 예상된다. <신데 렐라의 진실>을 쓴 진화 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월슨은 부모가 자신의 유전적 자식이 아닌 아이에 대해서는 투자를 적게 하게끔 진화했으리라고 제안했다."


"네덜란드의 진화 심리학자 마크 판 퓌흐트(Mark van Vugt)는 저서 <빅맨>에서 다음 가설을 내놓았다. 사람들은 풍족한 자원의 배분을 둘러싼 집단 내 갈등이 심할 때에는 여성 지도자를 더 선호하지만, 세계 경제가 불황이거나 전쟁 때처럼 집단 간 경쟁이 심할 때에는 남성 지도자를 더 선호할 것이다. 이 가설은, 남녀 심리의 진화적 차이에서 근거한다. 수백 만 년의 진화 역사를 통해서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자녀를 성공적으로 길러 내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남성보다 타인과 공감하고 배려,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나게 되었다. 반면에 남성은 짝짓기 기회를 되도록 늘리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다른 집단과의 전투나 자연 재해 같은 위협이 닥쳤을 때 두려움 없이 자신을 내던지게 되었다."
"요컨대, 집단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서 구성원 전체의 안위가 경각에 달린 상황일수록 강인하고 결단력 있는 남성 지도자 가 선호될 것이다. 반면에 자원은 이미 풍족한 상태이고 집단 구성원들 간의 화목한 관계 유지와 갈등 조정이 더 중요한 상황일수록 세심하고 배려심 깊은 여성 지도자가 더 선호될 것이다."


사회 복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좀 자세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충분하다.
"정치학자들을 따르면, 어떤 복지 정책에 대한 개개인의 찬반은 복지부가 발행한 자료집을 꼼꼼히 검토한 끝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찬성 혹은 반대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질문을 던져서 순식간에 결정된다. "그 수혜자가 혜택을 받아 마땅한 사람인가?" 즉, 사람들은 수혜자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혜자를 '불운한 개미' 또는 '게으른 베짱이'로 분류한다. 열심히 일했지만 어쩔 수 없는 외부 사정 때문에 어려움에 부닥친 개미는 마땅히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한다. 반면에 빈둥빈둥 놀면서 남들에게 기생하는 베짱이는 혜택을 받아선 안 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예를 들어, 노년층의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찬반을 물을 때 노인들이 산업화를 일군 주역이었음을 슬쩍 언급하면 찬성표가 많아진다."
"진화정치심리학자 미카엘 페테르센(Michael Petersen)은 현대인이 국가의 복지 정책을 판단할 때, 석기시대의 조상들이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도움을 주고받을 때 작동하던 심리가 그대로 쓰인다고 제안했다. 즉, 어떤 복지 정책을 판단할 때 국민들이 수혜자의 노력 여부에 유독 초점을 맞추는 까닭은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이웃 간에 자원을 나눌 때 도움을 되갚으려 노력하지 않는 사기꾼을 가려내는 일이 아주 중요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국가 차원의 대규모 복지를 마치 이웃 간의 소소한 도움 주고받기인 양 인식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컨대,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생각해 보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만 선별적으로 복지 혜택을 주자는 주장은 작은 공동체에 맞추어진 인간 본성에 착 감긴다("왜 재벌의 손자에게도 공짜로 밥을 줘야 합니까?"). 그러나 여러 연구는 보편적 복지가 선별적 복지보다 부의 재분배에 더 효과적임을 입증했다. 선거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산층 자신이 복지의 수혜를 받으면, 이들은 보편적 복지를 계속 유지, 강화하려는 정당에 표를 던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혜택을 못 받으면, 중산층은 복지 수준을 낮추자고 주장하는 정당에 쉽게 동조하게 된다. 수십 명의 작은 공동체에 맞춰 진화한 인간 본성이 자칫 수천만 국민들의 삶을 좌우하는 현대 국가의 복지를 엉뚱하게 망치는 일이 없게끔 각별히 신경쓰자."


다음은 정치 행위에 대한 저자의 설명의 요약이다.
"정치 심리학자들의 연구를 따르면, 나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는가가 실제 투표 행동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짜 원동력은 무엇일까? 후보자의 키, 외모, 성별, 나이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특히 중요한 요인은 도덕이다. 경제적 이해관계를 거스르면서 투표하는 유권자들은 자신의 도덕적 가치를 실천해 줄 후보에게 투표한다."
"유권자들은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에 따라 투표 한다는 것, 그리고 여기서 보수와 진보가 이해하는 도덕은 사뭇 다르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 유용한 시사점을 준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도 알아두면 좋을 것들이다.
"유아와 밀착해서 시간을 보낸 아버지의 몸속에서는 뚜렷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황제 펭권이나 산비둘기 같은 동물에서 자식에 대한 수컷의 보살핌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프로락틴 호르몬이 아버지의 혈류에서 증가한다. 반면에, 외간 여성과 바람을 피우게 하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은 감소하여 부부 간의 금실이 더 도타워진다. 한 연구에서는 유아를 단 15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버지 몸속의 프로락틴 호르몬이 유의미하게 증가함이 관찰되었다. 아이와 직접적인 상호 작용음 더 오래 할수록, 과거에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더 많을수록, 아버지 체내의 프로락틴 호르몬은 그만큼 더 증가한다."
"남성들은 성교에 대한 대가로 매춘부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 정교만 하는 대가로, 즉 끝나고 사라지라는 뜻으로 매춘부에게 돈을 준다."


이 책은 한국인 진화심리학자가 쓴, 한국 사회 분석서라고 할 만하다. 문장도 간결하고, 내용도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아 부피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데 학문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 읽기에는 편할 수 있어도 분석을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독서 추천은 '일독을 권함'으로 한다.